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순무의 겨울 (문단 편집) == 원인 == 사태의 원인은 독일이 여러 나라를 적국으로 돌리면서 교역을 포함한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고 [[영국]]이 [[영국 해군|강력한 해군]]을 동원해 해상무역을 봉쇄했기 때문이었다. 비록 몇몇 [[중립국]][* 주로 [[네덜란드]]나 북유럽, [[1916년]] 이전까진 [[루마니아 왕국|루마니아]]도 포함된다.]들이 독일과 계속 무역을 이어갔지만, 그 정도 크기의 시장과는 아무리 교역을 해도 필요량을 충족할 수 없었으므로 독일은 자급자족을 해야 했다. 전선에서 싸우는 [[독일 제국군]] 장병들과 후방 민간인들까지 매일매일 먹여 살리려면 상당한 양의 식량 자원이 필요했으나 이걸 자국의 물자로만 충당하기는 지극히 어려웠다. 독일이 평시에 식량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나라는 아니었지만, 원래라면 생산 활동을 할 인력들이 징집되어 전선에 수백만 명, 군수공장에 수백만 명이 투입된 상황이니 당연히 식량과 소비재 생산량은 급감하여 파탄날 수 밖에 없었다. 농촌에서 사람뿐만이 아니라 말(馬)들도 대거 징발당한 것 역시 노동력 부족에 한몫했다. 게다가 [[프리츠 하버|공기에서 빵을 만든다]]는 질소비료 생산 공장은 (역시 수요가 폭증한) 화약공장으로 전환되었고, 재래식 비료인 두엄은 그 원료인 똥오줌을 생산하던 소와 돼지 등을 잡아먹으며[* 독일 제국은 이미 1915년 초에 돼지살육(Schweinemord)이라고 불리는 정책으로 돼지를 5백만 마리(총 돼지의 1/3 정도)나 도축했다. 일시적으로 돼지고기 공급을 늘림과 동시에 사료용 곡물을 아끼기 위한 정책이었는데, 아주 틀린 판단은 아니었지만 딱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었다.] 마찬가지로 생산이 줄었다. 국제무역 단절, 노동력 부족, 비료 부족이 겹친 셈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